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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아시아연대회의에 참가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들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필리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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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02-27
  • Part of 서울대 퐁

03:04:27 "할머니와 연대하는 밤"
03:15:26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 입장
03:18:48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와 참가자들이 부르는 "사랑해"
03:23:00 참가자 및 참가단체 소개
03:32:56 참가자들이 부르는 "아리랑"
03:41:27 김순덕과 이용수가 부르는 "도라지타령"에 맞추어 춤추는 참가자들
03:43:09 민요 "사랑가"에 맞추어 춤추는 참가자들
03:44:29 이용수가 부르는 "새타령"에 맞추어 춤추는 참가자들
03:46:42 이용수가 부르는 "청춘을 돌려다오"에 맞추어 춤추는 이옥선
03:49:22 김순덕, 이용녀, 이용수, 박두리가 부르는 "창부타령"
03:55:33 줄리아 파토사 포라스가 한국의 피해생존자들을 위해 부르는 노래
03:58:18 넬리아 산초와 줄리아 파토사 포라스가 부르는 필리핀 노래 "Dahil Sa Yo"(당신 때문에)
04:00:53 둥글게 모여 손 잡고 노래 부르는 참가자들
04:02:26 재일동포 참가자들이 부르는 "오빠생각"
04:04:50 대만 참가자들이 부르는 민요 "阿里山的姑娘"
04:07:00 이용수가 부르는 "소양강 처녀"
04:07:52 강강술래와 대문놀이를 즐기는 참가자들
04:15:26 참가자들이 부르는 "우리 승리하리라"
04:16:30 참가자들이 부르는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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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아시아연대회의 종합토론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 SNU-A Fond1-SbF-01-Col-01-Ser-03-Fol-08-IT00000230-C2-IT00000230-C2-C012
  • 1995-02-27
  • Part of 서울대 퐁

01:02:17 종합토론
01:03:27 아이코 카터의 질문과 김혜원의 답변
01:08:02 시바자키 하루코의 발언
01:09:53 하라다 게이코의 발언
01:12:11 대만 참가자의 발언
01:18:22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 지원 방안 논의(지은희, 김문숙)
01:25:23 일본 참가자의 발언
01:28:30 마쓰이 야요리의 발언
01:29:25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 지원 방안에 대한 당사자 의견(강덕경, 줄리아 파토사 포라스)
01:35:15 신혜수의 발언
01:36:21 양순임의 발언
01:43:15 한국 참가자의 발언
01:44:28 신혜수의 발언
01:47:20 노부카와 미쓰코의 발언
01:50:40 일본 참가자의 발언
01:52:08 다카하시 구미코의 발언
01:54:44 시바자키 하루코의 발언
01:55:58 이용수의 발언
01:59:05 윤○○의 발언
02:00:24 신혜수의 발언
02:06:06 아이코 카터의 발언
02:07:52 한국 참가자의 발언
02:12:24 넬리아 산초의 발언
02:20:00 마쓰이 야요리의 발언
02:22:18 윤영애의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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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의 제3차 아시아연대회의 보도기사

  • SNU-A Fond1-SbF-01-Col-01-Ser-04-IT00000090
  • 1995-03-10
  • Part of 서울대 퐁

1995년 3월 10일자 여성신문 제315호의 1~4면 스크랩. 제3차 아시아연대회의 개최 소식, 회의 내용, 방청자(재일한국민주여성회)의 인터뷰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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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조] 이화여대 역사

이화의 역사(1886-2023), 이화의 인물(메리 F. 스크랜튼, 정인보, 박에스더, 김옥길)을 모은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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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1945 (전문학교 시대)

  • KR EWHA_ARCHI Fond2-2023-04-11/0-B01-2023-04-14/14
  • 파일
  • 1925~1945
  • Part of 이화여대 퐁

이화의 대학과가 목표한 것은 선진국들이 실시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대학교육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이화학당 대학과를 각 교파가 공동후원하는 기독교연합여자대학으로 성장시키려는 논의도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대학교육 기회를 제한하려는 일제 식민지교육정책으로 말미암아 이화는 대학의 꿈을 접어두고 전문학교 인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당 내에서는 대학이 전문학교로 격하됨을 슬퍼하기도 했으나, 이화여자전문학교의 정식출범은 전국에서 고등교육을 갈망하던 여학생들의 열렬한 호응과 기대를 받았습니다.
이 시기에 전문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사회의 책임을 지는 삶을 스스로 택하는 특별한 것이었고, 이화여전 출신들은 식민지하의 한국 사회 여성 선각자로서 각 분야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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