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规范记录
团体

매일신보

  • SE008
  • 团体
  • 1910년

1904년 7월 18일 영국인 배설(裵說:Ernes Thomas Bethell)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를 일제가 사들여 국권침탈 직후인 1910년 8월 30일부터 ‘대한’ 두 자를 떼고 『매일신보』로 개제한 것이다. 일제감정기에 조선총독부 기관기로 방행되던 일간신문으로 일제가 한국을 통치하기 시작한 날부터 광복되던 날까지 중단된 일 없이 발간된 한국어신문이다. 8.15광복 뒤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바꾸었다.

조선중앙일보

  • SE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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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3년 3월 7일 ~ 1937년 11월 5일

여운형이 『경성일보』를 개제하여 1933년에 창간한 신문이다. 신문의 계보는 『중외일보(中外日報)』(1∼1492호)→『중앙일보』(1493∼1871호)→『조선중앙일보』(1872∼3059호)로서 모두 제호를 바꾸어 인수하기 전의 호수를 그대로 계승하였다. 『조선중앙일보』로 제호를 고친 것은 중국에서도 『중앙일보』가 발행되고 있다는 이유도 있지만, ‘조선’을 붙여 민족적 정신을 부각시키고 독립의 의지를 불어넣으려는 뜻도 함축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민족반역자의 행태를 폭로 보도하여 사회적으로 경각심을 일으키기도 하고, ‘조선민란사화(朝鮮民亂史話)’를 연재하는 등 민중의 지지와 여론의 대변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그만큼 총독부의 탄압을 받아 수없이 차압을 당하고 기사삭제의 고난을 겪었던 신문이다.

영화시대

  • SE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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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1-1949

1931년 2월에 창간된 잡지로 특정계급이나 민중만이 아니라 일반 영화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를 지향했다. 창간 당시에는 박누월이 발행 및 편집인이었으나, 몇 차례 정간한 뒤 1935년 1월 재발행될 때는 편집은 여전히 박누월이 담당했으나 편집 겸 발행인이 김현수로 바뀌었다. 또한 1938년 1월과 1939년 8월에 각각 속간호를 내는데, 편집 및 발행인이 바뀌었으나 여전히 박누월이 편집을 담당했다. 해방 뒤에도 같은 제호로 1946년 4월에 인쇄인 한경, 편집인 박누월에 의해 간행되었다.

시와소설

  • SE013
  • 团体
  • 1936. 3. 13

『시와 소설』은 1936년 3월 13일에 창간되어 제1호로 종간된 문학 동인지이다. 창간호로 끝나버린 단명의 잡지지만, 운동으로서의 문학과 집단적 언어로서의 문학을 비판하고, 개인의 자율과 개성이라든가 표현과 기교를 중시하는 문학을 지향하는 구인회 회원들의 방법론을 단적으로 보여준 잡지였다.

광업조선

  • SE016
  • 团体
  • 1936. 6. 10 ~ ?

『광업조선』은 1936년 6월 10일 창간한 최초의 광업전문 잡지다. 통권 50호(1941.2) 정도까지 존재가 확인되나 그 이후 언제까지 발간했는지는 알 수 없다. 식민지 시기 조선에서 최초로 발간된 광업전문 잡지로, 1920~30년대의 시대 풍조 중 하나였던 금광열을 반영하면서 자본주의의 명암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강원도민일보

  • 团体
  • 1992-

1992년 7월 24일강원도민일보 법인설립

장미이발소

  • EX-2
  • 团体
  • 2000 - 현재

Example Corporation history (ISAAR 5.2.2)

Intergovernmental Bureau for Informatics. Africa Department

  • 团体

The Africa Department was created as part of a general reorganization in 1986 when the Cooperation Department was dissolved into three regional departments. The Africa Department inherited the Cooperation Department's activities for the francophone area of sub-Saharan Africa. The Department also inherited responsibility for coordination of activities with the regional centre CRIBI in Dakar, Senegal. This work was formerly carried out by the External Relations service under the direct authority of the Director General of the IBI. The Africa Department also had responsibility for coordination with the Regional Centres for Central Africa (Kinshasa) and Anglophone Africa (Lagos) when they were opened.

Intergovernmental Bureau for Informatics

  • 团体

The Intergovernmental Bureau of Informatics was created, with the name International Computation Center, under the auspices of the United Nations and UNESCO by an international Convention signed on December 6, 1951 in Paris. The Resolutions concerning the establishment of this body were taken by the United Nations and UNESCO in 1946, 1948, 1950 and 1951. The International Computation Center was transformed in three stages (1969-70: reorganization; 1971-72: consolidation; and, from 1978: expansion) into the IBI in order to react to the technological evolution in the field.

The IBI had 38 member states which were members either of the United Nations, or of UNESCO, or of one of the other Specialized Agencies of the United Nations.

At its sixth extraordinary session, held in Rome on 28 and 29 November 1988, the General Assembly, by resolution R.6E/09 decided that IBI would cease to exist as from 30 November. Dissolution had been made inevitable due to a series of difficulties encountered by IBI with regard to both its programme activities and its own organizational management and administration. These difficulties led to the successive withdrawal of several Member States from 1985 onwards, in particular the three main contributors (France, Spain and Italy) which deprived IBI of all its funding. Lacking resources, and in the throes of an unprecedented administrative crisis, with a temporary Board of Management acting as a Directorate, IBI was dissolved after 26 years spent in promoting co-operation in informatics.

Intergovernmental Bureau for Informatics. Executive Council

  • 团体

The Executive Council was one of the governing bodies of the IBI. It was composed of representatives of member states elected by the Assembly General. The Council met every six months. It was responsible for the execution of the programme (financial and operational aspects) as set out by the General Assembly.

Particularly in the 1980s, the Executive Council established different consultative committees to advise on specific matters, including: the Consultative Programme and Budget Committee, the Consultative Scientific Committee, and a Reflection Committee to consider the present and future prospects of the IBI.

The Executive Council held 57 ordinary sessions and 4 extraordinary sessions.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团体

문화예술진흥기금을 관리하고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사업과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기타공공기관).

1973년 10월 11일 특수법인인 '한국문화예술진흥원(KCAF)'으로 개원하였다가, 2005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되었고, 2007년에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으로 지정되었다. 2019년 기타공공기관으로 변경 지정되었다.

창립 당시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문로 1가 25번지 교육회관 501호실에 입주했으나, 1975년부터 종로구 동숭동 1-130번지 구 서울대학교 대학본부 건물에 자리잡다가 2010년부터 구로구 구로동 26-1번지를 거쳐 2014년 전남 나주혁신도시(나주시 빛가람로 640)로 이전했다.

극단 산울림

  • 团体

1969년 연출가 임영웅(林英雄)을 중심으로 김성옥(金聲玉)·함현진(咸賢鎭)·김인태(金仁泰)·김무생(金茂生)·장종선(張鍾善) 등이 극단 산울림을 창단하였다.

이 극단은 1970년 10월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작「고도를 기다리며」로 창립공연을 가졌다. 이 공연은 당시 현대극에 대한 이해와 공연이 별로 없던 한국 연극계에 현대극의 고전을 소개함으로써 커다란 관심을 모았다. 이 공연은 1989년 국내 극단 최초로 프랑스의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등 최근까지 재공연되면서 국내외에서 호평을 얻고 있다.

초기에는 ‘현대작가 시리즈’를 기획하여 사무엘 베케트·아서 밀러(Asher Miller)·로버트 볼트(Robert O. Bolt) 등의 번역극을 공연하였고, 창작극 발굴작업의 일환으로 김용락(金容洛)·최인호(崔仁浩)·조해일(趙海一) 등의 창작극을 공연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 초기의 단원들이 탈퇴하자 전무송(全茂松)·조명남(趙明男)·주호성(朱虎聲)·이주실(李周實) 등 새로운 구성원들로 제2기의 산울림을 형성하였고, 1982년 첫 작품인 이강백(李康白) 작「쥬라기의 사람들」로 제6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참가하였다.

한편, 1985년 전용극장인 ‘산울림소극장(170석 규모)’을 개관한 이후 거의 연중무휴의 공연을 하고 있다. 소극장에서 올린 공연 가운데 1986년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작․정복근(鄭福根) 각색「위기의 여자」는 최다공연기록을 세웠다. 이 작품은 1987년「영국인 애인」, 1991년「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1992년「딸에게 보내는 편지」등과 함께 여성문제를 다룬 연극으로 중년층 주부 관객을 극장에 끌어들이는 구실을 함으로써 연극인구의 저변확대에 기여하였다.

주요작품으로는 1971년「꽃피는 체리」, 1976년「홍당무」, 1978년「목소리」, 1990년「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등이 있으며,1985년 노경식(盧炅植) 작·임영웅(林英雄) 연출「하늘 만큼 먼 나라」로 제9회 대한민국연극제에, 1987년「유토피아를 먹고 잠들다」로 제11회 서울연극제에, 1988년「고도를 기다리며」로 제12회 서울국제연극제에, 1990년「위기의 여자」가 더블린 연극제에 초청되었다.

이외에도,1992년 장 쥬네(Jean Genet) 작·이성열(李聖悅) 연출「하녀들」, 1993년 김광림(金光林) 작·이성열 연출「여성반란」, 1994년 마누엘 퓨익(Manuel Puig) 작·채승훈 연출「거미 여인의 키스」, 1995년 드니즈 샬렘(Denise Chalem) 작·임영웅 연출「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1996년 이만희(李萬喜) 작·채윤일(蔡允一) 연출「돌아서서 떠나라」, 1998년 마샤 노먼(Marsha Norman) 작·임영웅 연출「엄마, 안녕…」, 2000년 안톤 체홉(Anton Chekhov) 작·임영웅 연출「세자매」, 2001년 조창인 작·임영웅 연출「가시고기」, 2004년 김명화(金明和) 작·임영웅 연출「카페 신파」, 2005년 김별아 작·임영웅 연출「윤석화의 정순왕후 영영이별 영이별」, 2008년 고연옥 작·임영웅 연출「달이 물로 걸어오듯」, 2009년 창단 40주년 기념작 박근형 작·연출「너무 놀라지 마라」등이 있다.

이 극단은 1969년「고도를 기다리며」로 제6회 백상예술대상 대상과 작품상을 수상한 이후, 1986년「위기의 여자」로 제23회 동아연극상 대상을, 1990년「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로 제27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1994년「거미여인의 키스」로 제31회 백상예술대상 대상과 작품상을, 1999년「고도를 기다리며」로 제36회 백상예술대상 대상과 작품상을 수상하였으며, 이외에도 다수의 주요 연극상을 꾸준히 수상하였다.

핫도리시마다 발레단

  • 团体
  • 1946

조선 출신 발레 무용가로, 일본 무용계의 대부로 불린 시마다 히로시(백성규·1919∼2013)가 창단한 공연단체이다.

조선일보

  • SE002
  • 团体
  • 1920~

조선일보사에서 신문명진보주의의 선전을 목적으로 1920년에 창간한 일간신문이다.

신인문학

  • SE012
  • 团体
  • 1934. 7. 9 ∼ 1936. 10. 1

『신인문학』은 1934년 7월 9일자로 창간된 신인 중심의 월간 종합 문예잡지이다. 1934년 7월에 창간되어 1936년 10월 1일 3권 3호로 종간되었다. 『신인문학』은 어떤 주의나 경향보다도 일반 대중의 관심과 흥미에 부응하는 식의 편집 방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1930년대 중반기의 종합 문예지로 신인 발굴과 창작의 활성화를 도모하였다는 의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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